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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026년 5월 가정의 달 맞이 "인권 백일장" 수상작 발표

분류
기타
작성자
인권상담교육실
조회수
470
등록일
2026.05.29
수정일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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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01.() ~ 2026. 05. 15.()실시된20265월 가정의 달 맞이 인권백일장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출된 작품들은 인권센터 내 인권 전문가 및 관련 분야 전문 외부 위원을 포함한 심사위원이 "주제 적합성, 진정성, 장의성, 완성도&표현력 등"을 중심으로 종합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최우수(1), 우수(1), 장려(3) 5개의 작품이 입상하게 되었습니다.

 

시상은 529()중 응모 시, 입력하신 핸드폰 번호로 수상자에게 개별 연락드리며,

참가상을 포함한 모든 상품은 529() 오후 6시까지 개별 문자로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권 백일장에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타 문의사항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권센터(02-3668-4164)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수상작 및 시상 내역


 

최우수(1, 200천원),우수(1, 150천원),장려(3, 80천원)/문화상품권


최우수상

 

서울지역대학

사회복지학과

◌◌

 

제목 : 큰 소리로 웃지 말아라

 

여자애가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거 아니다.”

 

별것 아닌 말처럼 느껴져도 삶을 지배하는 말들이 있다.

나에게는 엄마의 이 말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에는 내 행동을 먼저 붙잡는 말이 되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대부분 여자는으로 시작되었다.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

여자가 너무 나서면 안 된다.”

짧은 치마 입지 마라.”

높은 신 신고 다니는 거 보기 안 좋다.”

여자는 말조심해야 한다.”

 

엄마는 늘 나를 걱정해서 사랑해서 하는 말씀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린 내게 그 말들은 사랑보다 단속처럼 느껴질 때가 훨씬 많았다.

 

크게 웃는 것도 조심해야 했고, 입는 것도 조심해야 했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활달하고 밝은 아이였다.

엄마가 원하는 조신하고 얌전한 여자아이와는 꽤나 상반되었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 웃다가도내가 너무 크게 웃었나하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사람이 자기 웃음소리까지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무척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외출하려고 옷을 갈아입다가 다시 벗은 적도 많았다. 치마가 조금 짧은 것 같으면 마음이 불편했고, 높은 굽을 신으면 엄마의 눈빛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좋아서 고른 옷인데도, 엄마에게 꾸지람 들을까봐 먼저 위축되었다. 그때 나는 왜 안 되는 것이 이렇게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엄마 앞에 서면 가끔 부족한 딸이 되는 기분이 든다. 엄마는 여전히 옷차림을 걱정하고,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하고, 말과 행동을 단속한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엄마와 오래 함께 있는 일이 늘 편하지만은 않다. 엄마의 전화가 반가우면서도 때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해도 결국은 충고로 이어질 것 같아 마음이 먼저 닫힐 때도 있다. 대화가 길어지면 나는 어느새 설명하고, 해명하고, 방어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조금 피할 때가 있다.

이 사실이 늘 마음에 걸린다.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다. 아프시면 병원도 챙기고, 좋아하시는 음식도 사드린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남아 있다. 엄마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엄마 앞에서 내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있기 어려웠던 시간이 오래 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가 또 죄송하기도 하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우느라 평생 애쓴 분이신데, 왜 나는 엄마를 불편해 하고 멀리하게 되는지,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 있다. 엄마 역시 자유롭게 살기 어려운 시대를 지나온 분이었다. 엄마는 두 명의 동생들 사이에서 맏딸로 자랐다. 맏딸로서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먼저였고, 본인의 목소리보다 가족의 책임이 앞섰을 것이다.

엄마는 세상이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나보다 앞서 체험하신 분이시다. 눈에 띄면 말이 생기고, 웃음소리가 크면 흉이 되고, 옷차림 하나에도 평가받던 시절을 살았다. 그래서 엄마는 조심해야 덜 다친다고 믿었을 것이다. 조신하고 얌전한 편이 휠씬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의 말은 단순한 통제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배운 생존 방식이었고, 딸이 덜 상처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엄마를 이해하는 일과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다. 둘 다 사실이다. 엄마는 나를 지키고 싶었고, 나는 그 보호 안에서 작아지고 상처받았다.

나는 이 글을 엄마를 원망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오래 생각한 끝에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서 쓴다. 사랑도 때로는 사람을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걱정이라는 이름으로도 한 사람의 목소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예전에는 인권이라는 말을 들으면 법이나 제도, 큰 사회 문제를 먼저 떠올렸다.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권은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도 시작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고치려 들지 않는 것.

그 사람이 나와 다르게 웃고, 다르게 입고, 다르게 말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한 사람의 마음을 쉽게 넘어서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존중해주는 것.

나는 이런것들을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직도 말한다.

여자는 얌전해야 해. 여자는 큰소리로 웃지 않아.”

이제 나는 이 말 속에서 엄마가 살아온 세월을 듣는다.

하지만 엄마가 배운 두려움까지 그대로 물려받고 싶지는 않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의 방식으로만 나를 지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제 가끔 큰 소리로 웃는다.

그 웃음은 얌전하지 않다거나, 조신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답게 살아 있다는 소리다.

오래 조심하느라 작아졌던 내가 다시 나를 찾아가는 소리다.

딸이 큰 소리로 웃는다고 해서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잘못 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자기답게 웃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을 때, 그곳에서 존엄은 시작된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웃음을 함부로 줄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걱정된다는 이유로,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과 옷차림과 삶의 방식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하고 싶다.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 상처를 쉽게 주어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이 내 안에 오래 남았듯이, 내가 무심코 건넨 말도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더 천천히 말하고 싶다. 먼저 고치려 하기보다 들어주고, 먼저 걱정하기보다 믿어주고, 먼저 판단하기보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상처를 통해 배운 인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 태도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작게 만들지 않는 일, 걱정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목소리를 줄이지 않는 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을 쉽게 재단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한 사람의 존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목소리로 웃을 수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웃을 것이다.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크게.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기 위해 내 웃음의 크기를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웃음은 내가 나답게 살겠다는 작고 분명한 선언이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 앞에서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의 내 웃음은 엄마를 밀어내는 소리가 아닐 것이다.

오래 묶여 있던 마음이 조용히 풀리는 소리일 것이다.

큰 소리로 웃지 말라던 말 너머에서,

나는 이제 나답게 웃는 법을 배워 가고 있다.

우수상

부산지역대학

사회복지학과

◌◌

 

나는 일면식이 없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것은 현대인의 세련된 예의라고 믿어왔다. 어느 주말, 어머니와 백화점 푸드코트의 소란 속에 섞여 있을 때도 그랬다. 어린이날 특유의 들뜬 공기가 가득했던 그날, 옆 테이블에는 노란 옷을 입은 다섯 살 남짓의 아이와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식사 도중 아이가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그저 '냅킨을 가지러 가나 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의 어머니는 초조한 기색으로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내 시야에 다시 들어온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나의 견고한 벽 위로, 누군가의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백화점 푸드코트는 아득한 옛날의 재래시장으로 변모했다.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 시장통을 미친 듯이 헤매던 어머니의 젊은 날이 그곳에 겹쳐졌다.

"그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 평소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상실의 공포가 내 심장을 두드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할 뿐 금세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을 건넸다. "우선 고객센터로 가서 안내 방송부터 요청하세요." 이미 보았기에 알고 있었지만, 확인을 위해 아이의 착의를 물었다. "노란색이에요." 떨리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고 백화점은 넓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이가 본능적으로 이끌렸을 장소 하나가 스쳤다. 곰돌이 인형 팝업 스토어였다. 나는 시장 바닥을 헤매던 젊은 날의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뛰는 심정으로 인파를 헤쳐 나갔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마치 내 아이를 찾는 듯한 절박함으로 곳곳을 살폈다.

그때,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 옆에서 울먹이는 노란 옷의 아이가 보였다. 나는 재빨리 다가가 상황을 확인했다. 혹여 낯선 남자인 내가 아이의 손을 잡으면 아이가 더 겁을 먹을까 봐, 나는 아이의 손을 잡는 대신 직원과 동행하여 푸드코트로 향했다. 다행히 근처에서 울먹이던 어머니와 아이를 안전하게 재회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공을 직원에게 돌린 채 담담히 나의 어머니가 계신 테이블로 돌아왔다. 식어버린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손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잠시 후, 아이의 손을 꼭 쥔 어머니가 다시 내가 앉은 옆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란다.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았던 사람이라 그랬나보다. 아까의 사색이 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안도와 고마움이 뒤섞인 눈물을 닦아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비로소 숨을 크게 내뱉었다.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던 나의 냉소는, 누군가의 절망에 응답하는 순간 기묘한 뿌듯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내 어머니의 아픔으로 치환할 수 있는 공감, 그리고 그를 위해 무관심의 벽을 깨고 나서는 작은 발걸음이 바로 인권의 시작임을 그날의 노란 옷자락을 통해 배웠다.

 

장려상

경기지역대학

청소년교육복지 상담학과

◌◌

공적인 공간에서의 '인권'은 때로 누군가의 배려라는 가면 뒤에 숨어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인턴 생활은 나에게 그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한 시간이었다. 동료들은 나의 장애를 두고 "지능이 높은 사람도 많다"거나 "건강한 이야기를 해서 놀랍다"는 식의 무례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동료가 아닌, 그저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대상'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믿었던 멘토가 나의 사생활을 침해했을 때였다. 통화 중이던 전화를 가로채 나의 장애 사실을 상대방에게 임의로 알린 행위는, 나의 정보 주권과 인격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폭력이었다. 이후 이어진 사과 강요와 동료들의 가스라이팅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고, 내가 틀린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자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백일장의 주제처럼, 나는 '그때 왜 말하지 못했을까'를 후회하는 대신 이제는 목소리를 내려 한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내가 몸담았던 조직이 말하는 인권이 과연 누구를 향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타인의 사생활이 공공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직함이나 멘토라는 관계도 개인의 존엄을 앞설 수는 없다.

나는 이제 에서 입었던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 한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모든 개인이 온전한 '존엄'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선언이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간에서 벗어나 나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냈던 그 순간들이, 나를 진정한 인권의 주체로 바로 서게 했기 때문이다.

장려상

경남지역대학

간호학과

◌◌

: 인위적인 필터를 씌워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 권장 사양 같은 건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존엄성이라는 배터리는 혐오의 댓글 한 줄에도 쉽게 방전되기 마련입니다.

: 중언부언 긴말 필요 없이, 지금 당신 곁의 사람부터 귀하게 여기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장려상

인천지역대학

국어학과

◌◌

 

나는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바쁘셨던 탓에, 나를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에서 돌봐준 사람은 할머니였다.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저 늘 곁에 있는 사람이었고, 당연한 존재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달라졌다. 할머니는 백혈암으로 투병하게 되었고, 나는 그 곁에서 병간호를 하게 됐다. 약을 챙기고, 식사를 도와드리고, 밤마다 상태를 살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네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내가 받은 것을 돌려드린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나를 키워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할머니는 몸이 약해진 상황에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려고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말리고 싶었다. 더 빠르고, 더 편하게 도와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꼭 할머니를 위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물을 건네드리려 하자, 할머니는 직접 들겠다고 하셨다. 그 손은 예전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나는 그 손을 대신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돌봄은 단순히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지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무엇을 대신해주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남겨두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도.

 

투병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분명한 변화를 겪었다. 나는 더 이상 돌봄을 되갚음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과거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봄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의보다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대신하기보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병을 앓는 상황일수록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가능한 한 선택의 기회를 보장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쉽게 대신하려고 한다. 걱정된다는 이유로, 더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로 선택을 대신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사람의 삶은 조금씩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돌보는 동안 더 조심하려고 했다.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대로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을 빼앗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돌봄을 받았고, 다시 그 돌봄 속에서 존엄을 배웠다. 역할은 바뀌었지만, 지켜야 할 것은 같았다.

 

할머니는 끝내 내 곁을 떠나셨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보고 싶은 날이면 납골당을 찾는다. 두 주에 한 번쯤은 꼭. 그곳에 서 있으면, 나는 여전히 배운 것을 떠올린다.

돌봄은 누군가를 대신 살아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 머무는 일이라는 것을.



참가작 중 50명 선정하여 커피 기프티콘 증정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