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낮의 꿈(A daylight Dream)
생각 1.
며칠 전 '아프리카 병'에 걸린 사람을 TV에서 보았습니다. 그녀는 성악가로서 꽤 유명하며, 몇 년 전에 작고한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듣기도 하였었죠. 나는 그녀가 무슨 열대풍토병에라도 걸렸는줄 알았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요. 그녀는 1년 해봐야 40일 정도나 집에 있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연주 여행에 바쁜 것입니다. 아마 1년에 한 달 정도는 하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던 중에 남아프리카 공연이 있었나 봅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매우 한적하고 안락한 시간을 가졌다고 하더군요. 텔레비전에서는 그 감정이 잘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런 감정을 막연하지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녀는 그 감정 때문에 그곳을 떠난 뒤 한 달을 넘게 그곳을 그리워했답니다. 그것이 '아프리카 병'이었죠. 여유에 대한 목마름병?
생각 2.
어떤 책자에서 박씨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아마 그럴겁니다. 사실 신문이나 뉴스시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일거리를 찾다가 강동구청의 환경미화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구청에서 일한다고만 말하였지요. 왜냐하면 아이들 가슴이 아플까봐 서지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길을 피해 작업구역을 맡아 성실하게 일한 지도 10년이 넘었답니다. 큰아들은 이미 고등학교 학생이 되었는데 점점 공부는 등한시하고 노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다녔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박씨는 고민 고민하다가 큰 마음을 먹고 어느 날 저녁 가족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강동구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아들에게 아비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날 박씨 집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후 큰아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답니다.
생각 3.
요즘 그의 영혼은 사막의 메마름, 그것이다.
대학입시를 치르고 나자 입학하는 날까지 여유가 생겨, 어느 날 문득 그는 길을 떠났다. 추운 눈보라가 몸을 꼼짝 못하도록 매섭게 불던 대둔산 산자락과 한 시간이나 혼자 있어도 정말이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부여의 낙화암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의미있었던 곳은 포항의 어느 이름없는 바닷가였다. 그곳에서 수십억년전부터 출렁이던 바다를 보면서 그는 깊은 경외감에 빠졌다. 너무나도 짧은 사람의 인생을, 한편 허무하게 느끼면서도 죽음이 있기에 일초 일분이 귀한 것이라며 삶을 값지게 보내자 다짐도 했었다. 그때 이후, 그는 매년 2월경에는 혼자 가방 하나 달랑 들고서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다음 1년을 견디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그에게 주었다.
그러던 것이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이 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그의 정례화된 겨울여행을 이해하고 가방을 챙겨 주던 아내의 눈길은 이제 너무 애처롭게 바뀌었고, 그는 더 이상 혼자 떠나는 여행 가방을 들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 낙천적 허무주의자인 선배의 말이 자꾸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
생각 4.
삶의 질은 속도에 반비례한다. 고 나는 믿는다.
생각 5.
혹시 최근에 보신 비디오 있으세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는 시간이 좀 남는 사람인가 봅니다. 왜냐하면 그저껜가요, 비디오를 한 편 보았거든요. 네? 아, 제목이요? 잉그리쉬 패이션트요.
폭격으로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죽어 가는 한 탐험가의 회상입니다. 사막이 나옵니다. 그런데,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오아시스는 없습니다. 다만, '수영하는' 사람들 벽화가 인상적인 동굴이 있지요. 사막과 동굴. 참 재미있는 대칭 관계이고 무대 설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 영화에는 제가 해독하지 못한 관계를 포함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들이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있답니다. 보물찾기 놀이의 기쁨과 퀴즈풀이의 긴장감으로, 저는 지금도 해독하려 하고 있습니다.
생각 6.
올 4월 MBC 애드컴에서는 어떤 광고를 한 편 기획하고 있었다. 환경미화원 부자가 등장하는 광고였는데 모델이 나서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서울시의 모든 구청마다 연락을 하여 환경미화원 아버지를 둔 대학생들을 찾아 출연을 제의해보았다. 그러나 모두 거절되었다. 이 회사는 하는 수 없이 광고 제작을 전면 취소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박상호라는 대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곧 광고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 7.
꿈을 꾸었다. 하늘을 아무런 도움없이 날았다. 갑자기 불어 온 바람에 옥수수 밭에 떨어졌는데, 글쎄 무슨 애벌레가 되어 있었다. 꼼지락 꼼지락 7년을 기다려 어느 장마비가 내리던 날 애처롭게 서럽게 껍질을 벗었다.
세상은 바뀌어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TV를 보고 햄버거를 입에 쑤셔 넣으면서 넥타이를 매는 드라마를 본다. 창문을 연다. 로마에서 삼사십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곳이다. 옆집에서는 소를 기르나 보다. 잘 마른 땅 내음과 함께 소똥 냄새가 나는 듯 하다. 거실로 불어 오는 바람은 옅은 색깔을 있는 듯 하더니 이내 화려한 색을 띠고 나를 집밖으로 인도한다.
문을 열고 나서자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의 한 복판이다. 그곳에서 나는 쩌억 갈아진 땅과 모래바람에 이리저리로 굴러 다니는 나무덩굴에서 내 영혼을 만난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인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든지 어느 방향으로든지 갈 수 있기도 하다.
나는 이내 고고학자가 되어 있다. 과거 이곳에 살았던 털없는 원숭이들이 그려 놓은 그림을 해독하고 있는 중이다. 그림중에는 컴퓨터같이 해독하기 쉬운 것도 있다. 조금 복잡한 그림으로는, 시계로 보이는 것을 배속에 넣고 있는 원숭이의 그림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을 시계라고 하기보다는 피타고라스의 7음계나 케플러의 행성운행궤도라고 해독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다른 복잡한 그림은 내일 해독해야지 생각할 즈음 꿈에서 깨어났다. 그때, 나는 분명하게 보았다. 나비 한 마리가 우주를 부드럽게 흔들며 날고 있는 모습을. 신비로운 그 모습을 계속 보려 했으나, 그만 갑자기 나비가 작아지더니 날렵한 이승희의 허리춤에 날아 가 앉았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 사무실 팀장이 일어서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팀장은 드디어 이번 광고에 등장할 모델을 찾았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누군가 켜 놓은 라디오에서는 학창시절 듣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 수 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잊혀져간 나의 솔개여 ..."
나는 창문을 연다. 소낙비가 있었나 보다. 빌딩과 빌딩사이로 정체된 차량들이 애벌레처럼 꼼지락댄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제법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아, 고개 돌린 한쪽 편에서 나는 무지개를 본다.


